머리를 가누지 못하는 아이, 앉지 못하는 아이에게 단순한 발달 지연이 아닌 척수근위축증이라는 희귀질환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조기 진단과 치료가 예후를 좌우합니다.
1. 척수근위축증이란 –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유전성 신경질환
척수근위축증은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면서 근육이 약화되고 위축되는 유전성 질환입니다. 우리 몸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운동신경세포는 척수와 뇌간에 분포하는데, SMA 환아는 이 세포가 점점 사라지면서 정상적인 움직임이 불가능해집니다. 이로 인해 목 가누기, 앉기, 기기, 걷기 등의 기본적인 운동 기능이 점차 저하됩니다. 가장 흔한 원인은 SMN1 유전자의 결손 또는 돌연변이입니다. 이 유전자는 운동신경세포의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유전자의 결함으로 인해 SMN 단백질이 부족하게 되면 신경세포가 사멸하게 됩니다. SMA는 상염색체 열성 유전 질환으로, 부모 모두가 보인자일 경우 자녀에게 25% 확률로 발병합니다. SMA는 발병 시기와 증상의 정도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뉘며, Type 1형은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유형으로 보통 생후 6개월 이내에 발병합니다. 이 경우 아이는 목을 가누지 못하고, 호흡과 삼킴 기능이 약해지며, 치료하지 않으면 2세 이전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Type 2 또는 3은 조금 더 늦게 발병하고 진행 속도도 느린 편이지만, 점진적인 운동 기능 상실은 공통된 특징입니다.
2. 조기 진단과 치료가 예후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듬
SMA는 근육 질환이 아닌 신경세포 손상에 의한 2차적 근육 위축이기 때문에, 단순히 근육 약화로 보기 쉽지만, 실제로는 더 깊은 신경학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기 진단이 예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는 SMA를 신생아 선별검사에 포함시키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기에 발견하여 생후 몇 주 내에 치료를 시작한 아이들은 정상에 가까운 운동 발달을 보이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신생아에게 시행되는 검사는 아니므로, 부모와 의료진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생후 6개월 이전에 머리를 가누지 못하거나, 팔다리를 잘 움직이지 않는 경우, 울음소리가 약하거나 삼킴에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에는 신경근 질환에 대한 정밀 진단이 필요합니다. SMA는 혈액검사를 통해 유전자 이상 여부를 비교적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조기에 진단만 된다면 최근 들어 획기적인 치료제들이 등장하면서 아이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치료제로는 졸겐스마, 스핀라자, 에브리스디등이 있으며, 각각 유전자 치료, RNA 기반 치료, 경구용 약물로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SMN 단백질을 보충하거나 기능을 향상시킵니다. 이 치료제들은 가능한 빨리 투여해야 효과가 크기 때문에 조기 진단은 생명을 살리는 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희귀하지만, 관리 가능한 질환으로 바뀌고 있는 중
과거 SMA는 발병하면 예후가 매우 나쁜, 치료 불가능한 질환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5년 사이 치료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SMA는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치료제의 발전뿐 아니라, 물리치료, 호흡재활, 영양관리, 정서적 지원까지 포함한 다학제 치료가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SMA Type 1형 환아는 호흡기 합병증에 가장 취약하므로, 자택에서도 지속적인 호흡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또한 연하장애로 인해 위루관 삽입을 하는 경우도 많으며, 성장 발달을 위한 적절한 영양 공급 역시 중요한 요소입니다. 재활의학과, 신경과, 영양팀, 사회복지팀이 함께하는 종합적인 지원이 아이의 삶의 질을 높여줍니다. 가족의 심리적 지원도 중요한 치료의 일부입니다. SMA는 희귀질환이지만 사회적 인식과 지원이 점점 확대되고 있으며, 환자 가족들은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나 지원 단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정서적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고가의 치료제인 졸겐스마는 건강보험 적용과 함께 모금 활동을 통해 접근성을 넓히고 있으며, 의료진과 사회가 함께 연대하여 아이와 가족의 삶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척수근위축증은 이름조차 생소할 수 있지만, 신생아기부터 평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희귀질환입니다. 하지만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를 시작한다면, SMA는 이제 더 이상 절망의 병이 아닙니다. 아이의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는 관심, 그리고 빠르고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아이의 평범한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SMA와 싸우는 가족들에게, 정보와 연대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